
1. 호르무즈 해협 봉쇄: 중동 산유국들의 목을 조르는 '동반 자살' 스위치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원유 물동량의 약 20%가 지나가는, 그야말로 글로벌 에너지의 '대동맥'입니다.
이란이 미국을 압박하기 위해 이 해협을 기뢰나 대함 미사일로 봉쇄한다고 하는데요.
이란 입장에서는 최후의 일격이겠지만, 주변 중동 산유국들(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이라크, 쿠웨이트 등)에게는 그야말로 생명줄이 끊기는 것과 같습니다. 이 국가들의 경제 구조는 철저하게 원유 수출 대금(오일 머니)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해협이 막혀 유조선이 나가지 못하면, 당장 사우디나 아랍에미리트의 국가 수입은 '제로(0)'에 가깝게 수렴합니다.
문제는 이들 국가가 막대한 복지 지출과 대규모 인프라 투자(예: 사우디의 네옴시티 등)를 통해 국민들의 불만을 잠재우고 왕정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원유 수출길이 한 달만 막혀도 국가 재정은 심각한 적자에 빠지고, 내부적인 정치적 폭동이나 체제 붕괴의 위협에 직면하게 됩니다. 즉, 호르무즈 해협 봉쇄는 서방 국가들에게 주는 고통 이전에, 이슬람 형제국이자 경쟁국인 중동 산유국들의 숨통을 먼저 끊어버리는 동반 자살 버튼이나 다름없습니다.

2. 한 번 멈추면 끝? 석유 채굴 중단의 기술적, 경제적 재앙
"석유 채굴은 한 번 잠그면 다시 채굴하기 어렵다?"는 대목이 바로 이 사태를 파국으로 몰고 가는 가장 무서운 기술적 진실입니다.
지하 깊은 곳의 유전에서 석유를 뽑아 올릴 수 있는 이유는, 그 안에 엄청난 '지층 압력'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호르무즈 해협이 막혀서 석유를 수출하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요?
산유국들이 가지고 있는 지상의 원유 저장 탱크는 길어야 2~3주면 꽉 차버립니다. 더 이상 석유를 보관할 곳이 없으니, 어쩔 수 없이 유전의 밸브를 잠가 채굴을 중단(Shut-in)해야 합니다.
유전을 잠그면 지하의 압력 균형이 깨집니다. 기름 대신 지하수나 모래, 찌꺼기들이 파이프 주변으로 스며들어 구멍을 막아버리거나 유정 자체가 붕괴되기도 합니다. 나중에 해협이 다시 열려서 밸브를 연다고 해도, 예전처럼 석유가 콸콸 쏟아져 나오지 않습니다.
망가진 유전을 복구하려면 막대한 비용을 들여 특수 화학약품을 주입하거나 아예 구멍을 새로 뚫어야 하는데, 이 과정에 수개월에서 수년이 걸립니다. 심지어 영원히 생산 능력을 상실하는 유전도 속출합니다.
즉, 해협 봉쇄로 인한 강제적인 생산 중단은 중동 산유국들의 미래 '생산 능력(Capacity)' 자체를 영구적으로 파괴하는 재앙입니다.
그래서 전쟁이 3~4주 안에 끝이나야 하는 이유중 하나입니다. 그렇지않으면 경제적 재앙이 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3. 미-이란 전쟁으로 진짜 '파국'을 맞을 국가들
그렇다면 지금의 미국과 이란의 전쟁 구도 속에서 최종적으로 가장 끔찍한 파국을 맞이할 나라는 어디일까요? 제가 보기에 가장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국가는 역설적이게도 이란 자신, 그리고 에너지 자립도가 0%에 수렴하는 수출 주도형 국가들입니다.
먼저 이란입니다.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을 막아 미국과 동맹국에 고통을 주려 하겠지만, 미국의 압도적인 항공 및 해상 전력은 한 달 내에 이란의 주요 군사 시설과 정유 시설을 초토화시킬 것입니다. 유일한 밥줄인 원유 인프라가 파괴되고 경제가 마비되면, 가뜩이나 억눌려 있던 이란 내부의 반정부 시위가 폭발하여 체제 자체가 붕괴하는 진정한 파국을 맞게 될 수도 있습니다.
동시에, 우리 입장에서 가장 뼈아프게 바라봐야 할 곳은 바로 한국과 같은 국가들의 실물 경제입니다.
미국은 이미 셰일가스 혁명으로 세계 최대의 산유국이 되었기 때문에, 중동발 오일쇼크가 와도 자국 내 에너지를 돌리며 버틸 체력이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은 원유를 100% 수입에 의존하며, 그중 절대다수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중동산입니다.
유가가 배럴당 150~200달러를 돌파하면, 한국의 무역 수지는 즉각적으로 박살이 납니다. 달러가 유출되면서 환율은 걷잡을 수 없이 치솟고, 수입 물가 폭등으로 인해 인플레이션이 덮칩니다. 이렇게 되면 물가를 잡고 외국인 자금 이탈을 막기 위해 한국은행은 시장의 충격에도 불구하고 금리를 큰 폭으로 올릴 수밖에 없습니다. 안 그래도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국내 주식 시장은 외국인 매도세에 큰 폭락을 맞이하게 되고, 대출 이자 부담이 임계점을 넘으면서 부동산 시장 역시 연쇄적인 부실과 경착륙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로 내몰릴 수 있습니다.